작성일 : 23-10-08 07:13
|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
 |
|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82
|
1996년 10월 26일 목사로 임직하였으니 햇수로 만 28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28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경험을 한 끝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목사로 임직하기 전까지 이상하리만치 목사 임직이 힘들었습니다. 동기들은 벌써 목사로 임직하여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으나 저는 여전히 강도사였습니다.
강도사로 인허받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남들은 어렵지 않게, 아무 문제 없이 강도사 인허를 받았는데 유독 저만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접 장소에서 제 서류에 빨간색 줄이 그어지는 걸 보아야 했고, 그래서 다음 해 강도사 인허를 받기 위해 서둘러 결혼했습니다.
남은 건 목사 임직이었는데 강도사 인허보다 더 힘이 들었습니다. 분명 교회 부임 조건으로 철석같이 임직을 약속하고선 막상 임직 할 때가 되면 어렵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다 남들보다 3년 늦게 목사로 임직하였습니다.
목사가 되면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갈수록 첩첩산중이란 말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또 이런저런 어려움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와 함께 서로를 향해 우리 둘 다 집의 첫 열매들이니 믿는 조상이 없어 기도로 쌓아놓은 게 없어 힘들다는 말로 위안 삼아야 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남들보다 더 어려운 시간을 보낸 건지도 알 수 없으나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낸 건 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어려움은 단독 목회에 나서면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목회 자체의 어려움이라면 당연한 것으로 받을 수 있었지만, 목회와는 상관없는 어려움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역시 우리는 믿는 조상이 ~”하며 애꿎은 조상 탓만 하였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버텨 오늘에 이르고 있는 요즈음 어려움이 다 없어진 건 아니지만 마음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문득 이제까지는 목사로 예수 믿고 따랐다면 이제는 성도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도, 사역도, 주변의 일들도 그동안은 목사로 하였는데 이제는 목사가 아니라 성도로 하는 것 같고 이즘에서야 예수 믿는다는 게 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결국, 신앙이란 우선 내가 먼저 제자요,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하나님의 원하심이고 부르심인데 그동안 주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자와 자녀가 되려 하기보다는 사역과 주변 일들에 먼저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름 한다고 하였고 그런대로 꾀부리지 않고, 수 쓰지 않고, 머리 굴리지 않고 길을 걸으면 그게 최선인 줄 알았는데 그것 위에 더 높은 차원의 것이 있고 그것에 비춰 보면 그동안 행한 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얼마나 한참 모자란 것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일로 만나시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나시기를 더 기뻐하셨는데 저는 그저 일로만 만남을 이어가려 했으니 제가 살아오고 목사로 지낸 만큼 격차가 벌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퀴리에 엘레이손’- ‘주여 그저 날 불쌍히 여겨 주소서’ 의 기도만 반복,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해서도 안 되고, 할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불쌍히 여겨 주소서 기도만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