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1-0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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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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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홈지기
 조회 :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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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우리말 가운데 ‘능 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쉬어가며 일을 천천히 하다’는 뜻입니다. ‘일을 자꾸 나중으로 미루어 가다’라는 뜻도 있으나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많이,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말을 접하고는 ‘이런 말이 있었어?’ 하며 우리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더 찾아보았는데 그중엔 이미 알고 있는 말도 있었지만 전혀 처음 보는 것 같은 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게 해 준 게 ‘능 놀다’여서 인지 다른 말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능 놀다’란 말은 접한 건 몇 년 전이었는데 요즘 새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입술과 주위에 물집이 생겨 약국에 갔더니 바이러스가 어쩌고 하며 피곤해서 그렇다며 연고 하나 내주어 가지고 와서 틈틈이 바른 적이 있는데 성탄절과 연말이다 보니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고 몸도 마음도 지쳐서인지 마음속에 담고 있던 ‘능 놀다’라는 말이 떠오른 것 같습니다.
마침 여기 저기서 오라는 말도 들은 데다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어 뜨거운 온천물만 생각나던 터인지라 바쁜 일정 뒤로 하고 잠시 쉬었다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도 그럴 수 없는 건 제가 해야 할 일들이고 미룰 수 없는 일들이기에 그저 마음 한 켠에 꽁꽁 싸매 두고만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꾀가 나서인지, 지쳐서인지 이제는 예전과 달리 마음이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력이 생겨 매너리즘에 빠졌다거나 요즘 흔히 말하는 루틴, 판에 박힌 길을 따라가는 건 아니고 예전에 느꼈던 조급함, 분주함, 종종거림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책을 보고, 여전히 준비하고, 여전히 생각하고, 여전히 마음을 쓰고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 한쪽에서는 ‘잠시, 잠시~’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울증이라고 도 생각될 수 있는데 얼마 전 약식으로 한 뇌파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 없고 오히려 잘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터라 제 생각에도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약간의 쉼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편 생각해 보면 참 철없는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치열하고 분주한 세상에서 혼자 낭만에 가까운 생각을 한다는 게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증거일 수도 있고, 뭐 여하튼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지지난 주 식당에 있던 온풍기를 찬양대 연습실로 옮기던 도중, 제가 잡은 쪽에 연료가 들어서인지 한 계단 올라가다 힘에 부쳐 고꾸라졌던 일이 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눈이 많이 와서 눈을 치웠는데 박목사님이 거의 다 치워 별로 할 것도 없었으나 습기를 머금은 눈이어서인지 그것 조금 치웠다고 허리 통증이 전해져왔습니다.
몸이 그래서인지 마음도 덩달아 처져 며칠 남지 않은 2022년을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 오신 성탄절에 이런 넋두리를 주절거리는 것도 철없는 소리지만 조만간, 아니면 얼마 후라도 한 번은 쉬면서 숨 좀 돌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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