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0-09 07:51
|
요즘 느끼는 재미
|
 |
|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85
|
조선 인조 때 윤선도가 지은 오우가(五友歌)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의 다섯 벗을 말하고, 각각의 벗에 대하여 다시 한 수씩 노래하였습니다. 물·돌·솔(소나무)·대(대나무)·달을 보며 부단·불변·불굴·불욕·불언 등의 규범을 노래하였는데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과 무상함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변하지 않는 친구 다섯을 찬양한 것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이 시조를 읽으면서 정말 윤선도에게는 친구가 없어 이 다섯 가지를 친구라고 칭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속 깊은 사정이야 다 알 수 없으니 정말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조로 남길 정도면 전혀 뜬금없는 소리는 아닌 듯싶습니다.
한 편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별나서인지, 아니면 연락이 닿지 않아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신학교 동문회라는 걸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는 차제에 두고 정말 동문회, 동창회라는 걸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서만 학교를 다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살면서 동문회, 동창회 한다는 연락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간혹 신학교 동문 모임 한다는 광고는 교단 신문을 통해 보고 있지만 그건 기수를 배제한 총동문회지 우리 기수 동창회는 없고 신학교 또래 동기 7명 모임이 있어 겨우 명맥을 이어갈 뿐입니다.
동문, 동창뿐 아니라 친구도 마찬가지인 듯싶습니다. 초등학교는 말할 것 없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도 통틀어 중학교 친구 두 명이 전부입니다. 물론 그 외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 여럿 있었으나 둘은 중국에 (그 친구들조차 서로 마음이 상해 갈라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국내에 있는데도 종교가 다르고 사는 게 달라서인지 피차 소식이 끊어진 지 꽤 오래되었고 그나마 중학교 친구 두 명도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보는 게 전부입니다.
언젠가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하니 예준이가 ‘아버지도 친구가 있었느냐’며 깜짝 놀라던 모습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동안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지금 가는 길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할지라도 저는 계속 지금 가는 길을 갈 겁니다.
지금은 아내가 친구며 교인이 친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영원한, 그리고 진정한 친구인 우리 주님, 성령님이 계십니다.
우리 주님과 성령님이 영원하고 진정한 친구인 이유가 있습니다. 간간이 만나는 동기들 가운데도 더 친한 동기가 있는데 그 친구와는 서로 격 없이 속 깊은 얘기까지 다 털어놓는 그런 사이인데 그런데도 어느 때, 어떤 일을 두고는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못합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말을 안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겁니다. 자존심이나 열등감, 믿지 못함의 문제가 아니고 할 수 없는 얘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더 그렇습니다. 사이가 벌어져서 그런 게 아니고 얘기하기가 꺼려져서라기보다는 대신 주님께 미주왈 고주왈 주절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는 투정 조로, 어느 때는 애걸 조로, 어느 때는 하소연으로, 어느 때는 간절함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제가 거룩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데 그런 자랑이 아니고 친한 친구에게조차 못하는 혼자만의 얘기를 주님께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들어주실지, 거절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말을 들어주시는 분이 계심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다 보니 하나하나 더 얘기가 늘어갑니다. 길을 가면서, 방에 혼자 앉아 있을 때, 화장실에서도 점점 더 말이 많아집니다. 주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굳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