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5-1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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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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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홈지기
 조회 :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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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 일은 고사하고 내 일이고 내 것임에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거의 전부라고 보면 크게 빗나가지 않은 판단입니다.
내 맘대로 된다면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이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몇 년 전 병원에 가서 며칠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정말 거짓말처럼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의지적으로 내 몸을 상하게 해서 탈이 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이 씨가 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느닷없이 A형 간염으로 며칠간 입원하게 되면서 느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내 몸이지만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원하기 전에는 그저 며칠 푹 쉬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입원해 보니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입원 첫날 오랜만에 낮잠까지 자고 나서는 정말 푹 쉬는가 싶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8일 정도를 꼬박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틀을 견디다 주치의에게 요청하여 수면유도제와 수면제까지 처방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눈은 계속 감겨오는데 자려고 누우면 도무지 잘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잠이 부족한 나머지 앞이 흐릿하게 보이기까지 하였음에도 잠을 잘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퇴원해서는 한두 시간 쪽잠을 잤지만, 그것 가지고는 하루를 버틸 수 없었습니다. 해만 지면 거실에 자리를 깔고 암막 커튼을 쳐서 어둡게 하였음에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저를 배려한다고 아내나 아이들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서서히 정상적인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일들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 책장에 꽂힌 책들을 빼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손을 댔는데 한 번 속아낸 뒤로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마음은 이미 널널한 책장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빼곡히 입니다. 누군가에게 주고 기증하려고 해도 제가 보기에 별 효용 가치가 없는 책들이고 오래된 것들이라 주고 기증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욕이 될 수 있기에 그것도 어려운 일이라 그저 바라보며 어쩔까만을 되뇌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상황과 환경은 더더욱 내 맘대로 어쩔 수 없는 손님들입니다. 느닷없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들이닥치는데, 그걸 뻔히 지켜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들입니다. 작년부터 시작돼서 모든 일상을 다 바꿔버린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고 갑자기 닥치는 어려움이나 사고가 그렇습니다.
나이 60 정도면 겪을 일 웬만히 겪고 만날 일 부딪히고 지나왔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되지 않는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요즘들어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드러날 때 할 수 있는 건 ‘끼리에 엘레이손’,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그 한 마디입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기도하면서, 때론 길을 지나다가도 탄식처럼 ‘그저 불쌍히 여기소서, 은혜를 내려주소서’를 속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당하고 버틸 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책장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소서, 지혜를 주소서’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가지 지혜와 기준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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