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4-11 10:13
|
산이 아닌 사람 만 보다
|
 |
|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171
|
이미 몇 주 전부터 약속한 것이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저를 운동시키려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주신 행복한 제자학교 목사님 사랑도 있고 해서 월요일 오후, 오랜만에 심학산을 올랐습니다.
그동안 심학산을 오를 때 배수지쪽을 이용하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예수로교회 뒷길을 이용하여 올랐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5부쯤 오르다 돌아올 것을 예상했는데 정상까지 가자는 말에 ‘앗’소리도 못 하고 따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하기 전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냥 긴 팔 티만 하나 입고 나설까, 아니면 바람막이 재킷이라도 걸쳐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그동안 이런 계절, 날씨에 산을 오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바람막이 재킷 하나 걸치고 나섰는데 정상에 올라서야 입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르다 보니 월요일임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고 그분들 가운데는 장갑까지, 저보다 더 단단히 동여맨 옷차림들도 많았습니다. 반면 함께 오르는 목사님은 반소매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습니다. 속으로 괜찮을까 싶으면서도 워낙 몸에 열이 많은 분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목까지 꽁꽁 싸맨 이부터 반소매, 반바지 차림의 목사님과 중간의 어정쩡한 옷차림의 저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산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괜스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서인지 숨이 턱까지 걸쳤지만, 중간지점에 이를 때까지 내색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쉬어 가는 곳에 잠시 머물다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마지막 고개를 앞두고 거친 호흡으로 인해 마스크가 연실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정상 정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데 누군가 옆에서 이것저것 기염을 토하며 계속 말을 하는데 가만히 주위를 살피니 누구도 그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 없는 것 같고 그이와 함께 오른 이들조차도 어떤 이는 스마트폰을, 어떤 이는 멀리 경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교회 탑이 아스라이 보였는데 이제는 나무들이 훌쩍 커버려서인지 도무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10여 분 머물던 정자를 내려오는데 그때까지 그이의 말은 쉼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의 옷차림만 각양각색이 아니라 오르내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일행이 있음에도 누군가와 계속 통화하며 걷고 있고 어떤 이는 열심히 팔을 흔들며 오르고 어떤 이는 음악을 크게 틀고 걷고 있고 어떤 이는 뛰다시피 하여 정상까지 오르내리는가 하면, 다정히 말을 주고받으며 걷는 부부, 애완견을 데리고 오른 이들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시 생각해 보니 산에 나무며 풀이며 경치를 보러 간 게 아니라 사람 보러 갔나 싶을 만큼 사람 만보다 내려온 것 같습니다. 정자에서 만난 분으로 인해 잠시지만 산이 아닌 사람에게 시선이 모아진 것이 아쉬웠지만 성격이 그러려니 하고 지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커피 한 잔씩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차를 타고나서야 오늘 산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출발부터 들어올 때까지 두 시간 조금 더 걸린 듯합니다. 다음에 갈 때는 마실 물도 챙기고 무엇보다 사람이 아닌 그냥 산, 그 자체와 산에 오르는 것에만 집중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