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3-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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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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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홈지기
 조회 :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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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는 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어 줍니다. 일 년에 두 번 하는 옷 정리도, 가끔씩 한 번 뒤집듯 하는 집안 정리며, 쌓아만 두고 손대지 않아 마치 고물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던 종이박스며 파지 정리, 주기적으로 하지만 늘 어질러지는 책상 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새삼스럽습니다.
얼마 전 모아진 책들을 책상 위에 무작위로 포개듯 쌓다 보니 아래 책을 꺼내려면 위의 책들을 다 끄집어내려야 하고 보고 난 다음 다시 넣고 또 쌓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불편함이 은근하게 다가왔습니다.
궁리 끝에 책꽂이 몇 개면 해결이 되겠다 싶어 책꽂이 몇 개를 주문했고 도착한 날 바로 정리를 해버렸습니다.
하고 나서 보니 그런대로 잘 된 것 같습니다. 우선 책들을 겹겹이 쌓아두지 않아서 좋고 원하는 책은 다른 책에 방해받지 않고 언제든 그때그때 꺼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건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도 차분해지고 왠지 책이 더 잘 읽힐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더 많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까지 동시에 찾아와 적당한 긴장감까지 가지게 되어 좋습니다.
더하여 겨울이라는 핑계로 한쪽 구석에 무작위로 쌓아두었던 종이박스를 정리하였습니다. 일일이 테이프를 벗겨내고 가로세로로 접어 박스 하나에 담아두었습니다. 기왕 하는 김에 주변 정리까지 하고 나니 그것도 일이라고 헉헉거렸지만 역시 보기에도, 다니기에도 좋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다시 겨울옷을 넣어 두고 봄, 여름옷으로 바꾸는 일이 남았는데 그것 역시도 하고 나면 마음이 더 홀가분해질 것 같습니다.
한동안 정리에 강박증이 있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책장의 책들도 맨 앞줄에 맞춰 정리해야 하고 크기에 따라, 종류별로 정리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만 나옵니다. 물론 지금도 종류별로 정리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 그건 같은 종류끼리 모아 찾아보기에 좋으라고 하는 거지 보이기 위해 하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인지 귀찮아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별로 눈에 거슬리거나 신경 쓰이지 않아 그냥 지나곤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단지 나이 듦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도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한갓지고 차분해지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문득 책들을 정리하다 내 인생도 정리해야 할 때가 있을 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일 동기 아버님이 소천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조문하러 갔습니다. 마침 입관 시간이 겹쳐 기다렸다 만난 동기 목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로운 입관방식인지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수의 차림이었습니다. 보기에 좋은 만큼 수의를 입히는 분들의 수고가 보통이 아니었겠다 싶습니다. 그 사진을 보다 아내에게 혹 내가 먼저 가면 수의 입히지 말고 그냥 입던 옷 가운데 하나 골라 입혀 보내 달라 했습니다. 내가 없고 나면 어차피 다 버려질 옷들인데 그렇게 해서라도 한 벌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을 생각해 보니 살아온 날들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고 그러면 이제껏 살아오면서 쌓아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봄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제 방에 앉아서 사방의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언제 저렇게 쌓았나 싶을 만큼 쌓아둠이 미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누구처럼 읽고는 바로 버리든지 주든지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것도 못 하고 있으니 책만 쌓여 갑니다. 정리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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