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5-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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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멀어져도, 몸이 멀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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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홈지기
 조회 :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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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던 두 달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었고 교회들은 온라인예배에서 다시 현장-대면예배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동안 마치 겨울이 되면 몇몇 동물들과 식물들이 긴 겨울잠에 빠져 활동이 멈춰버린 것 같은 동안에도 여전히 시간과 계절이 지나 봄이 오듯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모든 활동들이 멈춰버린 것 같은 적막 속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갔고 세상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자기 할 일들을 빠짐없이 해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으로 거리에서조차 사람들과 마주치기 쉽지 않은 때에 교회로 출근하는 길, 아파트 담장을 따라 어느 순간 노란 개나리들과 붉고 하얀 철쭉들이 이리저리 엉켜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화 시인의 시구처럼 코로나 19로 빼앗긴 들에도 여전히 봄은 오는 구나 생각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공적 마스크 판매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공적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이들이 줄을 서고 있었고 저도 그 줄 끝에 가서 앞 사람과 여유를 두고 섰는데 금방 제 뒤로 줄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제 뒤에 서셨던 여자 분이 제 뒤로 바짝 붙어 뒤로 매었던 가방에 자꾸 닿는 느낌이 들었고 하여 조금 더 앞으로 가면 다시 따라 붙어 또 가방에 닿았고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제가 제 앞 사람과 바짝 붙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제 앞의 분도 그런 제가 신경이 쓰였는지 슬그머니 아예 옆으로 빠져 섰습니다.
한 편으로는 앞의 분께 미안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 뒤에 바짝 다가선 여자에게 화도 나고 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분은 껌을 씹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다가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제가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것이 그처럼 미안했던 적이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코로나 19가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생활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일 때 몸은 멀어져도 마음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내용의 캠페인 문구를 보면서 정말 그럴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그동안 줄곧 사용해온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사자성어는 거짓일까, 과연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 얘기일까 혼자 생각하며 자문자답했던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전 계획된 많은 일들이 기한 없이 미뤄지거나 취소되고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2000년 초반에 시작해서 그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두 차례씩 한국에서 개최되던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도 코로나 19로 인해 아예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고 제가 속한 선교회 이사회만도 저를 비롯해서 선교사들의 출국과 입국이 어려운 상황인지라 기존 계획을 취소하고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대면이 두렵기도 하고 부담과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앞두고 하고 싶고 읽고 보고 싶은 것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시험만 끝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굴뚝이어도 막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고 지내곤 하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일 때 마음을 다잡고 할 일을 메모까지 해두었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나사 풀린 조립 가구처럼 생각과 마음이 삐거덕거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몸이 멀어지면 (몸으로 느낌이 느슨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이 더 진리에 가깝고 옳은 말인 듯싶습니다. 못 믿을 게 사람 마음이고 다짐입니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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