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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2 10:19
들레지도 아니하며
 글쓴이 : 홈지기
조회 : 27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12:19)

  믿으실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제 마음 속에 혼자서 그려보고 꿈꾸고 소원해 마지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 12장 19절 가운데‘들레지도 아니하리니’입니다.

  ‘들레지도’- ‘외침. 고함소리’에서 유래된 단어로 ‘큰 소리를 내다, 고함치다, 소리 지르다’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신약성경에서 총 9번 나오며 모두 ‘소리 지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하나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겸손함과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들레지’않으십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언제인지 정확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오래 전 어느 순간 저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고 그때 이후로 ‘나도 저렇게 하면-큰 소리를 내지 않고 설교하면-좋겠다’는 막연한 꿈 아닌 꿈을 꾸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평소 제 설교 스타일을 아시는 성도님들 가운데 피식 웃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말 목소리를 들레지 않고 설교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을 흉내 내기 위함 이라거나 저를 드러내기 위함은 아닙니다. 큰 소리로 설교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강요나 강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설교는 강요나 강제가 아닌 설득입니다. 설득은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설교에는 무엇보다 성령님의 감동이 필수적인데 성령님의 감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큰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제 설교는 성도님들도 아시다시피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 위주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설교에 대한 선입관 때문인 듯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내 웅변대화라는 것이 있었고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대표로 나선 이들의 사자후 같은 웅변을 들으면서 막연히 저도 그런 모습을 동경하면서 설교는 사자후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 가운데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 성품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말이 빨라지고 더욱이 정해진 시간 안에 설교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소리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강조할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작년 몸이 아프면서 목소리가 아주 작아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선 식사를 제대로 못하니 당연히 배 힘이 달리고, 힘이 달리니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때 위의 본문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다시금 ‘들레지도 아니하고’라는 구절이 제 마음 속에서 자리를 잡았고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이나마 병을 앓게 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나름 작은 소리로 설교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그동안 해오던 습관 때문인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기에 지금도 종종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말 목소리를 ‘들레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노력과 신경 씀이 아닌 성령님의 은혜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할지라도 그 작은 소리 가운데 성령님의 감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리가 작아야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큰 소리로 해야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작은 소리라도 드릴 말씀을 다 드리고 그 안에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