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12-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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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향기, 사람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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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화평이
 조회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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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길을 지나다 보니 어느 마켓 좌판에서 세면 후에 바르는 로션과 크림을 무척 싼 값에 팔고 있었습니다.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 하나로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구입하였습니다.
마침 사용하던 로션도 있고 당장 쓰려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중에 쓸 요량으로 넣어두었습니다. 문제는 정작 쓰려고 꺼낸 다음입니다. 뚜껑을 열고 향기를 맡아보니 로션 가운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향기였습니다. 시간이 오래되었으니 바꿀 수도, 환불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요.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아내 화장품 장에서 오래 된 향수 한 병을 발견하였습니다. 향수의 냄새를 맡아 본 아내가 망설임 없이 쏟아버리곤 분리수거함에 병을 던져 넣더군요. 아마 오랜 시간 지나면서 본래의 향이 변한 모양입니다. 처음의 향을 잃어버린 향수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교회 전면에 ‘글 향기 도서관’이란 글이 붙어 있습니다. 그 글을 볼 때마다 은은한 향을 느끼곤 합니다. 코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더욱 은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향을 느낄 때마다 ‘참 좋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디선가 향이 좋은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커피를 볶고 난 다음 순간 바로 냉동 건조 시켜야 좋은 향을 낼 수 있는데 그 순간을 놓쳐버리면 금방 향이 달아나 극상품의 커피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커피가 그렇듯 녹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차를 맛있게 잘 우려내기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커피는 얼마나 잘 볶고 향을 잘 간직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결정되듯 녹차는 어떤 잎을 따서 잘 건조하고 우려내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달라집니다. (전문가들 입장에서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커피와 녹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커피와 녹차의 향은 찾아다니면서 정작 사람 향내는 풍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가졌던 향을 잃어버리고 떫은맛과 향 만 낸다면 처음의 맛과 향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좋은 차를 마시면 향이 달고 깨끗하며 맛있습니다. 그런데 마시다 남겨 둔 차는 같은 차인데도 맛도 향도 없어지고 어느 때는 떫은맛까지도 냅니다. 시간이 지나도 맛도 향도 잃지 않는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차가 될 것입니다.
늘 좋은 향과 맛을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욱 진해지는 향기와 맛을 낼 수 있다면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어도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니리라 생각해 봅니다.
햇살이 비추는 어느 오후 드려진 블라인드 사이로 언뜻 비쳐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차 한 잔을 마시다 문득 나는 이 차 한잔이 가진 향기만큼이나 향을 발하고 있는가 생각이 나서 주절주절 써 봅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까지 향기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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