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4-12 10:24
 조회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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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실 듯합니다.
유씨부인이 수십 년 사용하였던 바늘이 부러졌을 때
"오호, 애재라 통재라"
하며 그 작은 바늘과 함께 했던 회포의 정을 총총히 적어 내려갔던 글이 있었지요.
그 작고 무심한 바늘이 어찌 사랑할 만한 대상이었겠습니까?
오래 함께 하였던 시간이 그렇게 서운하였을터이지요.
이즈음 저도 유씨부인 못지않은 그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생각이 그렇습니다.
오늘같이 하늘이 내려앉은 날, 축축한 공기가 밀려다니는 날,
멀리 떠난 벗이 그리운 날.
이런 날 아침에는 커피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시작된 커피와의 동거가 이십년이 넘었으니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 하였을 때는 커피 타는 일이 주 업무이다시피 한 적도 있습니다.
서무 쪽 일을 하다보면 하루 종일 고객의 커피접대를 해야 합니다.
요즈음에야 커피 타는 일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직장 다닐 때는 남자들이 커피를 탄다는 생각은 못해 봤으니까요.
직장생활을 할 때는 언제나 잠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야행성의 기질이 있는지라 밤이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니 늘 늦게 자기 일쑤이다 보면
아침마다 단장하고 출근하는 것이 전쟁이었어요.
밥도 못 먹고 버스에서 졸다가 대하는 커피 한잔.
잠이 깨는 의식이었고 별난 고객과 상사와 동료들과의 무탈한 하루를 기원하는 다짐이었습니다.
더욱 냉정해지고 차분해져야 함을 자신에게 타이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상사라도 만나면, 커피를 기호에 맞게 탈줄 아는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커피를 맛있게 못 탑니다.
커피는 물이 많이 끓을수록 맛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똑같은 분량의 조제를 하더라도 맛에서 차이가 나는 법입니다.
결혼 후에는 주로 아줌마 동료들과 커피를 마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낼 수가 없기 때문에
무료한 시간들을 자주 모여서 지냅니다.
직장을 가지지 않은 주부들은 경험들이 다 있으실 것입니다.
장소 제공한 집이 놀이방이 되고 남편과 시부모님과 아이들이 차례로 화제에 오르고
커피잔이 엎어지고 아이들은 울고 뭐 그런 시간들입니다.
차를 즐기는 사람은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입니다.
차 마시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저는 개인적으로 싫어합니다.
소위 분위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차 마시기를 제의 하는 마음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하고 싶은 것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오직 먹는 것으로만 생각하여 거절하는 사람은 벌써 통하는 면이 적다는 뜻입니다.
차라는 것은 맛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차를 주문해 놓고 제가 곁에 앉기도 전에 숭늉 마시듯 후루륵 마셔 버리고
설거지 통에다 컵을 집어넣는 저희 남편 같은 사람은 좀 그래요.^^
이야기가 왜 이리로 튀어 가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제가 차를 마시지 못하는 명현반응으로 화가 나 있는가 봅니다.
아이들이 좀 크고는 혼자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많아졌는데요.
커피가 친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온 식구가 다 빠져 나가고 저만 홀로 남겨졌을 때
여유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지요.
대화역으로 해서 정발산 있는 곳의 저동고등학교까지 온 식구를 다 배달하고
들어오면 이불도 안 개키고 달아난 아이들의 방과 식탁위에는 그릇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지만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이 찾아 온 것에 안도하며 찻주전자를 불에 올리고
주섬주섬 식탁 위를 정리합니다.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빈 그릇과 수저를 개수대에 집어넣는 사이
김을 올리며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한 스픈의 설탕과 커피를 꽃무늬 머그잔에 옮겨 담고 가득 물을 따를 때
올라오는 향으로 인해 참 행복했었는데 ......
오 분의 여유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에 탈이 나면서 아직은 치료 중이고 끔찍한 편두통으로 인해 모든 카페인은 금지 되었습니다.
커피, 녹차, 홍차......
벌써 몇 주째 커피를 끊고 사는데요.
누가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하고 물으면 저도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군요.
“ 아, 건강 때문에 마실 수가 없어요.”
오! 이런 답을 하는, 분위기라고는 도무지 모르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날이 화창한 날은 몰랐는데 저의 온 몸이 한 잔의 커피를 무척 절실하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친구와 대구에 있는 친구의 얼굴이 자꾸 삼삼한 것을 보니
저는 커피보다 친구가 그리운가 봅니다.
왜 이리 멀리도 있는 것인지.
그 애들이 가까이 있다면 커피가 이렇게 생각나지는 않을 것도 같군요.
'에이. 왜 이렇게 비는 또 오는 거야?'
비 오는 마당을 내다 보니 목련 한 그루가 성큼 다가와 있군요.
눈을 감게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외칠 때 살짝 움직이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아이처럼 언제 이렇게 다가 왔을 까요?
겨우 내내 그것이 목련나무라는 생각도 못해 봤는데요.
너른 꽃잎이 비에 너풀거리며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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