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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가 내리는 마당의 풍경은 쓸쓸합니다.

따뜻한 백일홍의 분홍이 한들거리고 과꽃도 제 꽃을 피웠고,

이제 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자주색 국화의 무더기는 소담스럽습니다.

이상하지요?

울타리에 조롱박이 매달려 있고, 꽃이 있고,

잎들은 푸른데 왜 쓸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요?

국화, 가을의 전령 같은 그 소국이  보였기 때문인가 봐요.

아마 장미가 피어  있었다면  생각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비가 나리더라도 곧 모든 새싹을 움트게 할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국화가 피기 시작한 것은 가을이라는 의미이며,

그 가을은 곧 겨울의 문턱이라는 생각이 그런  상념을 불러 일으켰는가 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미처 스웨터를 준비하지 못한, 아낙의 드러난 팔처럼,

아직은 푸른 빛을  벗어 버리지 못한 풀과 잎들이 안타까워 보입니다.

사십대의 후반부를 지나고 있는 제 나이와

이 계절이 많이 닮아 있는 거 같습니다.

어리다고도 할 수 없고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가  사십대 인 거 같아요.

곧 갈색 옷을 갈아입을 저 초록의 잎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힘이 있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당신도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삼십대에서

마흔이라는 나이에 접어 들었을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치 내 청춘이 다 지난 것 같은 상실감으로 힘들었었습니다.

제가 십대 때에는 이런 어마어마한 나이가 존재한다는 생각도 못했었으니까요.

거울을 자세히 보기가 싫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온갖 잡티와 주름, 뽑은 자리에서 영락없이 다시 비집고 올라오는 하얀 머리카락,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볼 때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몸의 변화와는 다르게 제 마음은 아직도

중년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이기가 어색하기만 하답니다.

책방에 가면

인생의 후반전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요.

의식적으로 그런 암시를 하고 있는 서적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 내용의 인쇄물을 대하는 것이 마치

나의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시작 되었고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언제인가 끝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요.

내 인생의 모래시계에서는 지금도 쉼 없이

모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마당의 나팔 꽃 넝쿨은  세력을 많이 확보해서 기세가 등등하지만

이 계절이 다 지나기 전에 마른 갈색 잎이 바삭거리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당신......

저는 과정을 즐기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육신의 장막을 벗어 던지는 날은 내가 끝나는 것이 아니요

가슴 벅찬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출발점에 서게 되는 그 날을 생각하면

설레임으로 흥분이 밀려옵니다.

그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 저의 육체와 영혼은 

끊임없이 변화 하도록 설계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을 깨닫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거 같아요.

하기는 제 핸드폰이 자꾸 고장이 나면 수명이 다했다고

받아 들이는 것도 한참 걸리는 저이니까요.

당신과 나의 신념대로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그 새로운 또 하나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육체에게는 변화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모순 속에  머무르는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셋방살이  같은 인생의 집을 살다가

영원한 나의 견고한 집에 가게 되는 과정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속에 당신이라는 동무를 허락하신 그 분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오십대와 육십대를 맞이할 수 있다면 저는 훨씬 유쾌하게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거 같군요.

나의 이기심은 당신을 내 한계 속의 삶이 마치는 날까지 곁에 두고 싶어 하지요.

오늘은 하루 종일  나팔꽃이 피어 있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비에 늘어진 남색 얇은 꽃잎이 이제는 피곤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심히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 때  돌돌 말고 올라 가서  피운

그 꽃 무더기로 인해 아침이 얼마나 싱싱했는데 말입니다.

억지로 피어 있는 꽃은 이미 꽃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겸손을 알려 주려고 저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피어 있는가 봅니다.

때에 맞게 꽃을 피우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자판을 두드리다 벽 저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거울을 바라 보았습니다.

아직은 젊은 제가 저를 바라보고 있군요.

그래서 활짝 웃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도 한 눈을 찡긋하며 말을 거는군요.

      음..  좋아~

      그  여유 있는 표정은 감히 이십대가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이 있군.

      마음에 들어.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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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어르신들께는 약간?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해 주실 줄로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