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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납니다.

몸은 호리하여 아동티를 벗어버리지 못했으나  준 사춘기인 육학년의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 못하는 이 아이는  늘 주변을 시끌벅적하게 합니다.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힐 때부터 노래를 부르거나 엄마나 누나를 크게 부르면서 들어옵니다. 

그러나 오늘은 살며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저는 너무나 조용하게 들어온 아이의 귀가가 심상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이, 복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날마다 레포츠공원으로 축구를 하러 나가는 아이입니다.

귀가하는 시간은  일정합니다.

열두시경 나가면 검도학원으로 가기 직전인 4시 반 무렵입니다.

일사병 운운하며 아무리 말려도 무슨 출근부라도 찍듯이 나갑니다.

차라리  요즈음같이 비가 와 주는 것이 다행입니다.

햇볕이 내리쬐이는 것보다는 비를 맞는 것이 더 안심이 됩니다.

오늘은 시간도 한 시간이나 빨리 돌아왔습니다.

스르르 스러지듯 누워서 옆구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까맣게 그을른 얼굴 위로 땀과 눈물이 번들거립니다.

맹장염이 걱정 되어 위치를 확인해 보니 오른 쪽은 아니었습니다.

발을 씻으라 해도 도무지 행동을 못합니다.

대야에 물을 떠다 대강 얼굴과 발을 씻어 주고 눕히며 누구와 싸웠느냐,

 공에 맞았느냐, 누구 발길에 채였느냐 하며 채근을 하였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아파서 돌아오는데 아프니까 빨리 못 돌아오고 오래 걸렸다고 합니다.

아이를 눕혀 두고 인터넷에 ‘왼쪽 옆구리 결림’을 쳐 보았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아프냐며 참견하는  큰 누나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악을 씁니다.

자기를 놀린다고 힘써 소리를 지르며 땀을 흘립니다.

저는 검색한 것을 읽어 보며

     네가 그렇게 아픈 것은 아닌 것 같구나 .

     그렇게 힘이 넘치는 것을 보니......

 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아이는 잠이 들고 저도 검색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왜 원인도 없이 쟤는 가끔 아픈가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남편 쪽의 어떤 유전자가 문제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렸을 때  저 자신이 이유 없이 자주 배가 아팠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외갓댁에서 자란 저는 주로 외할머니에게 제가 배가 아프다는 호소를 하곤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저의 아픈  배를 거친 손으로 만져 주셨습니다.

언제나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라는 대한민국 공통 주문을 외우셨지요.

따가운 듯 부드러운, 거칠고도 따뜻한 그 신비한 할머니의 커다란 손바닥에

식은땀 나는 아픈 몸을  온통 맡기고는 마법의 세계로 가는 주문인양

할머니의 무릎 위에 엎드려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곤 했지요.

자고 나면  새로운 저녁이나 아침이곤 했어요.

아프지 않은 상쾌함이 같은 날 저녁도 새롭게 인식이 되었던 거 같아요.

할머니의 그 신기한 주문은 아주 강력한 효력이 있었는데

특히 두드러기에는 최고의 항생제였습니다.

저는 어려서 두드러기가 자주 났었습니다.

지금도 통조림이나 햄 종류를 잘 못 먹으면 온 몸이 가려워 몇 날씩 고생을 하게 됩니다.

아마 두드러기 체질인 것 같습니다.

모두 같이 먹어도 저만 나는 것을 보아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는 특히 고등어 때문에 두드러기가 자주 났었습니다.

툭툭 돋아나는 두드러기를 온 몸에 피가 나도록 긁어대는 저를 할머니는 아궁이  옆에 앉혀 놓으시곤

온 몸에  소금을 살살 바르시며 소위 그 주문을 외우시곤 하였습니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

     우리 손녀 딸 몸에 돋은  두드러기 어쩌고......

 하며 저주를 푸는  주문을 외우셨습니다.

발간 불기운과 소금으로 인해 상처가 난 곳은 따끔거렸지만,

거친 농사일로 갈라질대로 갈라진 할머니의 손바닥 틈 사이에서는 치료약이 나와서

제 몸에 발라지는듯한 안도감이 넘쳤습니다.

오늘 제가 아들에게 대했던 방식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육아법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 몸을 다정하게 만져라도 주었더라면 아이가 뒤틀리는 옆구리를

감싸 안고 집에 와서 누나에게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지요.

병의 증상을 알아내는 것이 뭐 그리 급한 일인지.

어차피 결석인지 장의 뒤틀림인지 병원에 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제가 진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네가 너무 햇볕에 심하게 놀아서 결석이 생겼나 보다.

하며  검색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바탕 아이에게 도움도 안되는 진단만 내리는

이 선무당같은 신식 엄마인 제가 오늘따라 왜 이리 한심한지요.

아이는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어느 사이 벌써 많이 커버렸습니다.

곧 제 품에서 독립하려고 할 터인데 이 아이가 자라면 할머니 약손 같은 엄마를 기억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만 알아내려했던 그런 네이버지식같은 엄마로

저를 기억할까봐  걱정이 되어 아이를 살짝 안아 주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이의 표정이 무척 평화스러워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