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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연을 통해 위대하신 조물주의 손길을 느끼는 사람,

분주한 삶 속에서 한 박자 쉬어 가며 나를 돌아보며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

짠지에 풋고추 된장만 찍어 먹어도 집에서 느낄 수 없는 황홀한 밥 맛 때문에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몸 관리 차원에서 가려는 사람이 가장 많을 듯하다.

우리 남편과 같이 무슨 이유라기보다  산에만 가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다니다 보면 중독이 되어 매 주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위의 어떤 사항에도 해당이 없는데 왜 나는 매주 산에 오르는 것일까?

산을 좋아하는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내가 산을 가지 않으면 가정불화의 연속이다.^^

   ‘내 한 몸 희생하여 가정이 편안한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매 주 산에 끌려가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

구름은 잔뜩 하늘을 덮고 일기 예보는 이미 많은 비와 뇌성벽력을 예고하고 있다.

     “여보, 오늘 등산 안가도......

       되지요?”

하고 확신에 찬 긍정으로 물었는데도 답이 없다.

할 수 없이 도시락을 준비하고 집을 나섰는데 교회 앞에 가 보니 우리 부부와

전문 산악인, 우리의 영원한 청년 집사님 한 분 뿐이다.

같이 가기로 한, 두 사람은 아예 전화도 없고 낙오병 대장도 한 명 뿐인 대원인 나를 놔두고

자기 길로 갔다고 한다.^^

다 이해 할 수 있다.

목숨은 귀한 것인데 며칠 전 이런 날 등산 했다가 벼락을 맞고 다섯 사람이나 희생을 당했는데,

그 벼락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벼락이 무섭다고 발언을 해 봤더니 그 벼락이 내리 치면

내가 대신 맞을 터이니 걱정 말고 가자고 하시는 우리의 프로 산악인이시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한숨을 푹 내 쉬고 끌려갔다.^^

지난 밤 잠을 몇 시간밖에 못 잔 나는 차 속에서도 자꾸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이 상태로는 산을 못 오를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다.

에구, 모르겠다. 체면불구하고 어르신 앞에서 아니, 앞은 아니다.

나 혼자 뒷 좌석에 탔으니까...

예의 없다고 흉을 보셔도 할 수 없다. 하고 스르르 쓰러져 잠을 잤다.

아니, 누워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재난방지메세지가 기상청으로부터 도착했다.

많은비와 뇌성벽력을 주의해서 외출을 삼가하라나?

눕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 몸은 다리를 폈으면 좋겠다고 요구하고 있었다.

   ‘한 없이 편해지려는 내 몸의 욕구를 부지런한 남편을 만나 억지로라도 제어하고 살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공자 같은 생각도 잠시 오락가락 한 것 같다.

그래도 북한산으로 가려다 피뢰침이 있다는 감악산으로 행선지를 옮긴 것만 해도 조금 위로는 된다.

산 입구에 도착해 보니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이미 많은 비가 내렸는가 보다.

가랑비가 내리니 비 옷을 입었다.

남편은 언제나, 장비가 있으니 비나 눈이 와도 괜찮다고 자랑을 한다.

초입부터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자 내 몸의 열기를 감당 못해 비 옷을 입고 갈 수가 없었다.

하늘은 점점 캄캄해지고 있었다.

산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래도 언제나 무언가 산뜻한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이 산이었는데,

사방이 어두워지니 지척에서 공비라도 나타날 것 같은 으스스한 음산함이 몰려 온다.

중턱에 오르니 설상가상으로 안개가 잔뜩 끼었는데 그것은 안개가 아니라 구름인가 보다.

구름끼리 부딪히면 번개가 된다는데

   '이렇게 구름 속에 내가 들어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하는 걱정도 되었다.

자꾸 벼락 걱정을 하는 나에게 남편이 그렇게 오래 살고 싶으냐고 한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오래 살고 싶은 게 아니라 벼락 맞아 죽기는 싫다고! "

모두 앞에 가라고 하고 약간 뒤로 쳐져서 가고 있는데 바로 앞이 잘 안 보인다.

지난 주 유유자적한 포즈로 나를 제압했던 뱀도 오늘은 활동을 할 것 같다.

이런 날씨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출현 하는 게 아니라 왜인지 혼령들이 판을 칠거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산이 육이오 때는 격전지였을 터인데 그 때 전사한 육군들의 유령이 나타날 것 같다.

   '그래도 처녀 귀신보다는 훨씬 낫지. 남자잖아. 여자들이 더 독종이야.'

이런 잡동사니 생각들로 머리 속이 두근거리며 가고 있는데 난 거의 기절 할 뻔 했다.

갑자기 진짜 군인 유령이 나타났으니까.

앞서 가던 남편이 땅에까지 끌리는 국방색 판초우의를 입었는데 어두운 주변에

완벽하게 위장이 되어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휴~

산에 오르면 심폐기능이  강화된다는데 심장마비로 먼저 죽을거 같아!

초저녁도 지나서 밤의 길목에 서 있는 듯한   어둠 속에서 그래도 마음을 반짝이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뽀얀 버섯과 긴 꽃대를 올려 노오랗게 피어나 주변을 환하게 하는 원추리 꽃이다.

온통 거무틱틱한 속에서 빛나는 새벽의 빛을 보는 듯한 기쁨이다.

고지를 앞두고 산은 점점 위협을 하고 있다.

뭔가 큰일을 낼 것 같은  분위기,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으로 넘치고 있다.

정상을 앞두고 밥을 먹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에 약간 서운한 마음마저 들려는 것을 보니

나도 어느 사이  골수가 되어 가는 것인가?

밥을 먹는 사이 심상치 않아 재빠르게 먹었는데 거의 다 먹을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의를 걸치는 사이 옷이 흠뻑 젖어 버렸다.

우리의 전문가님은 그래도 우산을 펴시고 식사중이시다.

여기에서

     "너희가 물에 젖은 밥을 먹어봤느냐? "

는 말이 유래 되었을 것이다.^^

드디어 우르릉 쾅~! 번쩍! 온통 요란하다.

비에 젖은 생쥐처럼 되어버렸다.

바지는 몸에 찰싹 달라붙어 버리고 방수를 자랑하는

값비싼 등산화 속에서는 물이 질척거린다.

이런 사태가 생길까봐 계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은데

막상 그 상황이 오니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비를 맞아 주면 되는 것이었다.

포기를 하니 차라리 즐기는 법이 생겼다고나 할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산을 내려 오는데 자꾸 웃음이 나와서 혼자 배실배실 웃었다. 

언제나 왕초보인 내가 이런 날까지, 생쥐처럼 하고 산을 가는 것이 우스워서이다.

뇌성벽력이 무서운데 남편이 등산용 칼을 내 비옷 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 넣는다.

이 쇠붙이를 왜 나에게 줄까?

그래서 나만 죽으라는 거냐고 했더니^^ 비가 자꾸 와서 녹슬지 말라고 안전한 곳에 넣어두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없는 이런 날에 이 위대한 산행을 마치고 하산 하였다.

큰 산을 오르시는 청년 집사님께서는 비가 오는 것이 산에 가고 안 가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몇 날 며칠을 산행을 하실 때에는 항상 비오는 날이 끼기 마련이라고 하시며 그것이

인생과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살다 보면 구름 끼고 흐린 날도 있고 밝은 날도 있다.

비가 온다고 해가 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하셨다.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법과 어떤 일을 할 때 끝까지 마무리 하는 인생의 지혜를 

산에서 배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며 내가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한다고 하시며 칭찬을 해 주셨는데

그것이 이제 빠지지 말고 산에 오라는 미끼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나와 함께 건강하게 살다가 주께서 부르시면 기쁘게 달려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남편의 갸륵한 바람을 내 어찌 거절하겠는가?

산이 나를 부르지 않더라도

오를 때마다 과부하가 걸린 심장이 팔딱거리더라도

이렇게 높은 산을 만드신 하나님이 원망스럽더라도,

곧 다시 내려올 산을

나는 또 올라가야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