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핸폰에는 언니 이름이 '채원이언니'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언니는 저를 '재원아' 하고 부르지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평생 이렇게 부를지도 몰라요.
운동장에서 만났지요.
아이들 운동회 때......
그런 통로를 통해 이렇게 오래까지 소식이 오고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나이 들수록 더욱 절실하게 깨닫고 있어요.
그 때 채원이와 재원이 몇 학년 이었지. 언니?
고학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우리 무척 젊었었나 봐요.
난 내가 무슨 음식을 싸 갔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언니가 색을 곱게 넣어 만든
삼색 샌드위치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언니 모습처럼 곱게 만들었다고 생각 했었지요.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졌어요.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조용하고 신중하지만 비극적이지 않아서 유쾌한......
(ㅎ 내 칭찬을 내가 쓰는거 같아요.)
그런 저런 공통점이 많아서 우리는 쉽게 서로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어요.
그 때 채원이 눈 주변으로 난 혹 때문에 언니 얼굴에 근심이 많았었지요.
난, 생각 없이 벌레에 물렸느냐고 물었던 그 경솔함을 두고 두고 후회했어요.
신경이 예민하게 분포된 곳이라 힘든 부위라고 했지요.
채원이가 그렇게 수술이 잘 되고 너무 예쁜 아가씨로 자라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몇 년 소식 없다가 언니 이혼했다는 소식 말하면서 괜히 언니가 더 미안해서 쩔쩔맸지.
언니, 참 힘든 시간들을 잘 보냈네.
언니는 원래 귀부인 스타일인데 아이들 데리고 그렇게 고생 하는 것이 그래서 더 안스러워.
너무 말랐더라.
너무 힘들어서 때로는 돈 많은 남자라도 생기면 좋겠다는
속물같은 생각도 든다고 한숨 쉬는 언니를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언니에게 사랑이 찾아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이제 노후가 외롭고 힘들지 않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언니에게 찾아 오면 좋겠다고
그래서 언니가 가고 싶은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같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누구인가가 언니의 삶 속에 나타나면 좋겠다고......
물론 그 사람은 행운아지.
언니같은 괜찮은 사람을 아내로 맞아 벗이 될 수 있다면......
언니, 오늘은 비가 정말 많이 오고 있어요.
창문으로 물이 퍼붓듯이 넘치고 있어요.
무심히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 보다가 언니 생각이 났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방을 치우다 굴러 다니던 "인생수업"이란
책을 보는 순간 언니 생각이 났어요.
언니가 꼭 읽어 보라고 권해 준 그 책인거 같아서요.
우리 몇 년 더 지난 후에 같이 여행도 가고 그래요.
세상에서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귀한것 같아요.
서로의 진실을 믿어주기까지는 이제 더 많은 시간들이 들고 있어요.
언니. 이제까지 인내했으니 조금 더 견디노라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거야.
언니 얼굴이 평안해서 좋아.
그리고 혜원이와 채원이 그렇게 예쁘게 키운 것도 보기 좋고 .
메일 주소가 "겸손한" 이네요.
역시 언니다운 주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언니,
내가 언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예수님 믿으라는 말인데......
이런 말 하면 나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할거예요.
물론 언니는 나를 '독실한' 이라고 표현해 주겠지만요.
그래도 내가 경험한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서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마음의 중심에서는 분명 언니도 믿고 있을거야.
언니는 천주교 신자이니까.
그러나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언니.
내 인생의 주권자, 결정자, 위로자,안내자이신 그 분을 내 마음이 믿고 있느냐가 중요한거지.
언니, 나는 언니를 절대 전도 대상자로 여겨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기 바래요.
]
정말 언니가 좋아.
그래서 이 말을 하는거지.
언니같이 곱고 예쁜 사람이 (얼굴도 마음도 예쁘다는 뜻이예요)
그렇게 아픔을 겪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우리의 인생은, 장래 일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거 같아요. 언니.
언니가 힘들고 아플 때 아무 힘도 못 되어 주어서 미안하고요......
이렇게 비가 줄기차게 퍼붓는 날에도
언니는 오늘도 힘들게 일할거 같아.
"언니, 화이팅!" 이라고 외치고 싶어요.
사랑하는 재원이가
작성일 : 07-07-1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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