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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인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였다.

우비를 입고  진달래도 철쭉도 진,  그저 평범한 연초록들의  잔치인 운악산을

남편과 함께 더듬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때 남편의 외사촌 동생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가 휴대폰으로 전해져 왔다.

천천히 등산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조수석에서  나는 졸았다.  

염치없이 쏟아지는 졸음과, 눈을 뜨려는 사이사이로 두통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의정부를 지나 송추에 접어드니 마치 하늘을 열어 놓고 물을 퍼붓는 듯하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차들은 자기 갈 곳을 망설임 없이 질주한다.

집에 와서 두통약을 한 알 먹고 청소며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이미 죽음을 맞이한 그를 빨리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밤 열시가 넘어 서울 도심에 자리한 평생에 그가 드나 들던 병원에

갈 때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로비에서, 가라앉은 날씨처럼 채색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의 시집 안 간 큰 누나가 우리를 먼저 맞아 주었다..

슬픔도 기쁨도 담아 두지 못한 얼굴이었다.

문상객을 맞는 그의 방 앞에서는

이 *  * ,  44세,  상주: 부인 김 * * 라는

점광판의 붉은 글씨가  깜빡이며 지나가고 있었다.

장지... 벽제 승화원.

미처 상복을 입지 못한 죽은 자의 처가 울고 있었다.

국화 한 송이를 뽑아 그의 무심한 영정 앞에  놓고 그의 처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부잣집 딸로 가난하고 병든 자를 신랑으로 맞아 병간호와 생업을 책임지고 살다 이리 되었으니.  

     “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어요.

       아침에도 기분이 아주 좋았거든요”

그녀의 부어 오른 눈두덩 밑으로 연실 굵은 눈물 방울이 솟아오른다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어요.

       영원히 같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편두통이 가라 앉은 나의 머릿 속에서는 맹렬한 저항들이 일어난다.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하고 인슐린 펌프를 몸에 장착하고 살던

그저 자신의 병을 이기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던,

구급차에 실려 중환자실을 거듭 드나들던 자신의 남편과의 이별을 애써 외면하였던

그 배짱에 대해서... 

남편의 요절은 이미 정해진, 그녀가 받아 들여야 할,

주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을 선택 했을 때 이미 결정된 사항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녀의 가련한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환자의 까다로운 식이 요법에 매달리고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슈퍼를 운영하여

생활비와 치료비를 감당하며 보내버린 그녀의 꽃다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두 사람 다 가엾기가 이를데 없다.

독자로서 자녀를 생산하지 못했으니 이제 대가 끊어졌으나 그것을 슬퍼할 부모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의 누이들만 특별한 사랑으로 두 사람을 구속하였으니 짐스러움이  오죽 하였을까?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망자 자신도 정작  자신의 죽음을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고

심근경색이 찾아와 심장의 박동이 멎어 버렸을까?  

가난한 가계와 병든 동생 때문에 결혼을 못한 큰 누이와

마음도 모습도 고운 그의 아내에게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시한부의 삶,

몸의 이 곳 저 곳에서 끊임없이 그의 죽음을 예고했지만 그는 한 마디의 유언도 준비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한시적인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남은 날수가 얼마일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곧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필연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한 번도 곧 죽을 것이란 생각을 못 해본다.

마치 내가 선택을 해야 죽음이 오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 나의 죽음은 둘째 치고라도 생존하시는 부모의 죽음도 생각하지 못 해본다.

모든 것이 내 곁에서 영원할 것 같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우리의 본능은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려 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것에서는 무조건 도망치고 싶어진다.

조물주의 영원하심 앞에서 이 얼마나 가소로운 생각을 넘어 기이한 일일까?
늘 죽음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있으면서 유서는커녕

유언 한 마디 하지 못한 그가, 내게 이상한 것처럼 말이다.

죽음은 그의 삶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이다.

벽제 승화원은 납골의 안치를 하지 않는 곳이다.

그저 그 곳에 육신의 재를 두고 오면 그 후에는 그 곳의 직원이  처리를 할 것이다.

찾아가서 목을 놓아 울 장소도 허락하지 않는

그의 단호한 죽음은,  어쩌면 

죽어서만이라도  누구에게라도 짐이 되지 않겠다는 그의 유언일 것 같다.

심근경색을 일으켜 예상한 죽음을 몇 년 앞당긴 그의 죽음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것을 원하지 않는,

마지막 베풀 수 있었던 최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편안하여진 그의 육신의  안식 위에 안도하며

한 때 그가 꾸었던 꿈들,

이 땅에서 감히 말로서 표현조차 해보지 못했을 희망의 노래를,

이제 마음껏 부르게 된 것을 나는

진정으로 기뻐하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