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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총 김치

글/인치일 장로

조선무는 작달막하고 둥근 편이다,

단칼에 잘릴 것 같지만

어찌나 단단한지 칼이 중간쯤에 한번은 멈춰 선다.

거기에 비해

왜 무는 길고 허여 멀건하게 크지만 단단하지 못해서

찬바람에 쉽게 바람도 들고 또 쉽게 부러진다.

조선무는 깍두기를 담가도 어찌나 야무진지

입속에서 씹히는 소리도

요란스럽게 "아작~" "아작~" 댄다.

그러나 조선무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조선의 농사꾼들이 재배를 피해서

언제인가 부터는

왜 무가 조선 땅을 평정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아내가 학생으로 등록하여 공부한다.

우리 학생은 아침 8시면 집을 나선다.

월요일 아침 등교 길에 집을 나서는 아내가 흘린 말이다.

"시들기 전에 무 좀 다듬어 놓으세요!"

"무총도 열무김치 담게 버리지 마세요!"

주일 오후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농사꾼 직영 마트에서

왜무, 영어로는 Horse Radish를

발견 하고는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듯

몽땅 거머쥐더니만

떨이로 흥정하여 무총 달린 무 20 여개를

손 큰 아내가 몽땅 사왔다.

그도 그럴 것이 까만 화산 석으로

코나 섬 전체가 덥혀있어

이렇게 커다란 무를 발견 해 낸다는 것은

우리 가문의 영광이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다.

이후로 아내의 어깨와 콧날이 좀 올라붙었다.

그리고 내게 웬만한 일은 턱으로 지시했다.

이처럼 귀하고 값진 무를 혼자 다듬고 씻어 가면서도

행여 불평이나 반항 같은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나는 참 고분고분 했다.

다만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자신만의 깍두기 담는 비법이 있었다.

깍두기는 물이 많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깍두기는 소금에 절이지 않는다.

아무리 고춧가루 양념을 많이 해도

깍두기 무에는 양념이 달라붙지 않고

국물에 씻기어 국물은 빨개도 깍두기는 허옇다.

영업집에서는 깍두기에 양념을 달라붙게 하려고

쌀풀을 쑤어 양념과 함께 버무린다.

소금에 절이지 않는 김치는 이처럼 쌀풀을 쓴다.

그러면 풋내도 없애고 양념 맛을 더할 수 있다.

나는 칭찬 받기위해서

우리 아버지의 비법대로 깍두기를 담기로 했다.

우리 아버지의 깍두기 비법은

깍두기 무를 아주 큼직큼직하고 굵게 썰어서

햇빛에 2일 정도 무말랭이 말리듯 말리면

수분이 다 없어지고 꼬들꼬들 해진다.

이렇게 말린 무로 깍두기를 담그면 국물도 없어지고,

양념도 잘 달라붙고

그리고 깍두기의 당도가 높아진다.

이때에 쌀풀을 쓰면 더 좋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내가 버리지 말라는

무총으로 열무김치를 담았다.

원래 열무김치는 무 싹이 막 자랐을 때

연하고 앳된 무총으로 김치를 담는 것이다.

특히 여린 조선무의 무총과 무를 함께 담는

깍두기 김치를 총각김치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 하와이 코나 섬에서

굵고 거칠고

가늘고 여린 무총을 가릴 그런 여유를

우리 아내에게 묻거나 기대 해서는 안 된다.

그 것은 반항이다.

무조건 썩지만 안은 무총이면

아내는 몽땅 김치를 담았다.

익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열무김치를 열었다.

그러데 이 김치 재료는 열무가 아니라

무슨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김치를 담은 듯

열무김치가 입 속에서 입천장과 볼따구니를

마구 찔러댄다,

"맛있지?!"

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그래도 이럭저럭 혀로 달래서 씹어 보지만

무슨 칡뿌리를 씹는 것처럼 질깃한 것이

물에 불은 수세미처럼 입안 가득하게

불어나더니 도대체 목으로 넘어 가지를 않는다.

--

아내가 학교에 등교하고 부터는

언제나 나 혼자 점심을 먹어야한다.

무엇을 먹을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버리지도 못하고 냉장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볼 찌르던 우리 집 열무김치 생각이 났다.

혹 김치를 지져서 찐 김치를 만들면 물러질까?!

-

찐 김치는 고등어 혹은 꽁치 통조림을

국물채 그대로

폭삭 엎어 넣고 하는 것이 일품요리다.

그 중에도 고등어를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가진 게 없다.

학교에서 가져온 햄조각과

먹다 남은 돼지고기 몇 점을 넣고 끓였다.

쉽게 무르고 구수한 맛을 내려면

옥수수기름이나 올리브기름을 약간 넣어도 좋다.

(올리브기름은 발화점이 낮아 쉽게 타고 증발한다,

그래서 튀김이나 지짐을 할 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버터처럼 소금 간을 해서 빵을 찍어 먹으면 좋다.)

찐 김치의 간은 설탕으로 한다.

다른 어떤 양념을 넣어도 강한 김치 맛에 압도당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니 아껴두기 바란다.

없으면 할 수 없지만

맹물 보다는 치킨 부로스 (닭 국물)한캔 정도를 쓰면 좋다.

맛 없어 버리기 직전의 허연 것 둥둥 뜬

신 김치 보다는 덜 익은 선 김치로

찐 김치를 하면 더 맛이 좋다.

속고만 사셨나?.

의심이 나면 해 보시기 바란다.

--

맛도 보기 전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 뚜껑 사이로

익어가는 진한 찐 김치 냄새가 올라온다.

아!~ 이 냄새는....

어린 시절 내 고향 집에서 맡아 본 그 냄새다.

순간 내 머리카락이 주삣 올라서면서

콧등이 시큰해 진다.

전쟁이 끝나고 가난에 찌들어 살던

그 시절 내 고향집에는

흰머리를 곱게 빗어 쪽찌고 옥비녀 꽂으신

내 할머니가 계셨고

숱 많은 검은 머리를 파마해서

검정 머리핀으로 유행 따라 멋을 내신

내 어머니가 계시던 내 고향은

충청도 당진 어느 구석진 갯마을 이었다.

비릿한 갯 내음 사이로 흘러나온

찐 김치 익어가는 냄새

이 품위 있는 찐 김치는

결코 경망스럽게

김치찌개라고 불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글은 여러분들이 깍두기를 담는데나 찐 김치를 만드는데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무총 이란 무청의 충청도 사투리 입니다)

이천십일 년 이월 그믐날에

인치일 선교사(예수전도단)